따뜻한 '감성사전'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인것 같다. 소설 벽오금학도에서 받은 작가에 대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감동 받는 다는 것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작가가 아주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화라도 걸고 싶어져야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의 말이 생각났다. 책을 읽고 나서 이외수님과 친한 친구 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분량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지만 한페이지에 하나 혹은 두페이지에 하나 정도에 한 단어씩 그에 대한 설명을 여백과 함께 어우러져 놓았다. 그래서 천천히 음미 하면서 읽는다고 해도 넉넉히 2시간이면 충분하다. 명색이 사전인지라 뒷편에 각 단어에 대한 색인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작가의 장난기 어린 시선도 살짝 느낄 수 있고 색다른 진지함도 묻어나 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쳐간 사물들과 감정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느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각박하게 생각하면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 지고 여유롭게 생각하면 점점 더 여유 로워 지는게 세상 아닌가 싶다.
감성사전 엿보기..
기도 : 신이 매사를 완벽하게 선처해 놓았는데도 이에 불만을 품은 인간들이 처우개선을 구두로 상소하는 행위.
불행 :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어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섬 : 모든 이름은 하나의 섬이다. 모든 영혼들도 하나의 섬이다. 모든 혹성들은 하나의 섬이다. 모든 성단들도 하나의 섬이다. 섬에서 섬으로 그리움의 바다가 흐른다. 가슴 안에 간절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자들만이 섬과 섬 사이를 오갈 수 있다.
이민 : 자신을 다른 나라에 내다버리는 행위를 점잖게 이르는 말.
광신자 : 오직 지상에서 자신만이 신의 유일한 사도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모든 인간들을 악마로 규정하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굳힌 사람. 그들은 대개 제일 먼저 자신의 가족을 팽개침으로써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모순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오직 자신이 믿고 있는 신만이 전지전능하며 남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무지무능하다고만 단정하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타인의 종교적 성숙도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종교인이다. 그들은 천국에 대해서보다는 지옥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고 구원에 대해서보다는 멸망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용서에 대해서보다는 심판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성자들의 행적보다는 죄인들의 행적을 더 많이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구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배후에는 대체로 욕망에 가득 찬 악마가 신의 얼굴을 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이기주의적인 신앙심에 부채질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 : 인도주의로 포장된 여러 가지 공해 물질들을 약소국가에 강매하는 나라. 자국의 문화쓰레기를 타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 타국의 전통문화를 가장 많이 파괴시키는 나라. 평화를 가장 많이 부르짖는 나라. 그러면서 전쟁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나라.
속물근성 : 천박한 자기수준을 끝끝내 개선하지 않은 채로 자신이 타인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부각되기를 바라는 습성. 모든 욕망의 나무를 자르지 못한 채 가지마다 공명심, 이기심, 질투심, 시기심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살아가는 습성. 아무런 철학도 없고 아무런 고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요긴한 생활필수품. 소인배들의 전유물
붕어 : 자연이 문명의 탁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을 자연 속으로 낚아올리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미끼.
예술 : 술 중에서는 가장 독한 술이다. 영혼까지 취하게 한다. 예술가들은 숙명처럼 마셔야 하는 술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들의 술주정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들이다. 거기에는 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