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에서 로트레크까지 프랑스 인상파 기행
(표지그림은 클로드 모네 - '아르장퇴유의 빨간 보트')
가을 이라서 그럴까? 음악과 시 그리고 그림이 그리워 진다. 그리운 마음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자 마자 들고 나왔다. - 사실은 빌리려고 했던 책이 대여중이었기도 했지만 ;; - 책을 지은 사사키 부부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좋아하여 파리에 머물며 프랑스 전역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의 '배경'과 그들이 '살았던 곳'을 두루 탐방하면서 그들의 흔적을 쫓고 있다. 이 책은 그 기록을 모은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주변을 떠나 마음이 한가로워 지는 기분이 들었디. 마치 여행이라도 하고 온것 처럼 말야... 책에 실린 사진들은 - 사사키 부부와 고카이 이치로가 찍은 - 정말 그림속의 풍경과 흡사 했다. 물론 의도적으로 연출한 부분도 없진 않겠지만 책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즐거움이 될수 있으니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는 친자연주의적인 바르비종파의 거장 '밀레' 였다. 초상화에 담긴 외모도 출중 했던 밀레. 만종,이삭줍기, 씨뿌리는 사람등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웬지 따뜻해 진다.그의 작품중 '만종'을 카메라에 담아 재현한 사진이 흥미로웠다.(프랑스는 저녁 9시가 되어서야 해가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의 분위기를 살릴수 있는 저녁 노을을 만나기가 어려웠다고...)
그냥 사람이 그 장소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어 버리는 구나. 프랑스 여행가게 되면 한번 시도해 봐야 겠다. 여행의 즐거움을 하나더 만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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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 풍경을 찾아서
책을 펴내며
고흐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쪾불꽃같은 생애와 종말의 땅
마네와 인상파쪾새로운 예술 창조의 중심에서
피사로와 오페라 거리쪾화려하고 매혹적인 도시
르누아르와 샤토 섬쪾슬픈 그림을 그리지 않는 화가
밀레와 바르비종쪾세계에 울려 퍼진 「만종」
모리조와 부지바르쪾여성스럽고 섬세한 감각
드가와 무희들쪾순간의 동작에서 진실을 발견하다
쇠라와 아니에르쪾점묘로 표현된 인상주의
모네와 지베르니쪾연작으로 지새운 만년(晩年)
세잔과 퐁투아즈쪾새로운 시대를 부른 화성(畵聖)의 정신
로트레크과 몽마르트르쪾화려한 밤거리를 그린 화가
시슬레와 폴 마를리쪾걸작을 낳은 가혹한 운명
뭉크와 프랑스쪾이국땅에서 보낸 고독한 삶
옮긴이의 글
연표│인상주의 시대의 화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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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from YES24..
1884년 무렵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젊고 몸집이 작은 남자가 살고 있었다. 신장 152센티미터, 두툼한 입술, 커다란 코에 턱하니 안경을 쓰고 있는 독특한 외모. 소년기에 당한 두 번의 골절로 성장이 멈춘 짧은 다리에 긴 부츠를 신고,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면서 춤추는 듯한 자세로 걷는 남자, 툴루즈 로트레크이다. 하지만 로트레크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보면서도 누구 하나 비웃는 사람이 없었다. 귀족의 장남으로 태어난 로트레크에게는 사람을 위압하는 타고난 기품과 위엄이 있었다. 그 당시 몽마르트르 언덕은 ‘검은 고양이’라는 이름의 카바레와 뮤직홀 ‘물랭루즈’로 화려한 유흥가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로트레크는 물랭루즈에 매일 밤이 멀다 하고 찾아와 약동하는 인물들을 그렸다. 그가 즐겨 그렸던 것은 몽마르트르의 무희 ‘라 굴뤼’와 그 남자 파트너인 ‘뼈 없는 발랑탱’의 콤비였다. 로트레크가 그린 물랭루즈의 포스터는 이 두 사람을 모델로 한 것이지만 그 외에도 붉은 머플러의 가수 브뤼앙 등 다양한 인물을 담아냈다.---「로트레크와 몽마르트르」중에서
(책의 사진을 디카로 찍은 것임;;;)
밀레의 작품들 : http://www.youth.co.kr/rs/rs030020.htm
인상주의 회화는 대략 1867~86년 일련의 공통된 접근방식과 기법을 구사한 일군의 화가들이 제작한 작품을 망라한다. 이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빛과 색채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 가시적 세계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한 점이었다. 주요화가는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카미유 피사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베르트 모리조, 아르망 기요맹, 프레데리크 바지유 등으로서 이들은 함께 작업하고 서로 영향을 미쳤으며 공식적 인정을 받으려고 줄곧 애쓴 마네를 제외하고 그들은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찍부터 문학적·일화적인 의미를 담은 역사적·신화적 주제를 그릴 것을 강조하는 전통적 아카데미 회화의 가르침에 불만을 느꼈다. 또한 아카데미 회화의 특징인 판에 박힌 공상적 또는 이상적 표현기법도 거부했다. 1860년대말에 이르러 마네의 미술은 장차 인상주의의 지도지침이 될 새로운 미학을 반영했다. 즉 전통적인 주제는 중요성이 떨어지고 예술가가 구사하는 색채와 색조, 질감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마네의 회화에서 주제는 평평한 색면(色面)을 솜씨있게 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또 원근법적 깊이를 최소화시켜 관람자가 그림에서 창출되는 환영적인 3차원 공간에 빠져들지 않고 그림표면의 형태와 관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모네는 외젠 부댕, J. R.용킨트 같은 혁신적인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뛰어난 색감과 물감에 의한 다양한 질감으로 하늘과 바다의 변화무쌍한 순간적 효과를 묘사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또 야외에서 스케치한 것을 작업실에 가져와 유화로 완성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버리고 부댕이 그랬던 것처럼 애초부터 야외에 나가 실제의 사물을 보면서 그리는 방법을 채택했다.
1860년대말 모네·피사로·르누아르 등은 들과 강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여 특정한 시간에 자연의 빛 속에 나타나는 대상의 색채와 형태를 냉정하게 기록하고자 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풍경화의 색조인 흐릿한 녹색·갈색·회색 등을 버리고 보다 가볍고 밝으며 찬란한 색조로 그렸다. 먼저 그들은 물에 비치는 햇빛의 작용과 잔물결 위로 반사되는 색채를 그리면서 자신들의 눈에 비치는 햇빛과 그림자, 그리고 직사광선과 반사광의 복잡하고 생생한 효과를 재생시키고자 했다. 망막에 기록되는 직접적인 시각적 인상을 재현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들은 그림자에 회색과 검정색을 사용하는 것이 부정확하다고 판단하고 대신에 보색을 이용했다. 더욱이 그들은 순수한 조화색이나 보색의 불연속적인 점묘와 가벼운 붓질로 물체를 조형하여 햇빛과 그 반사에 의해서 생기는 색조의 변화와 반짝임을 표현하는 법을 익혔다. 그들의 그림에서 형상은 분명한 윤곽을 잃고 재창조된 야외의 현실상황 속에 명멸하고 요동하면서 비물질화되어갔다. 또한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 구성을 버리고 대신 그림틀 안에 좀더 우연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물을 배치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같은 새로운 기법을 인상주의자들은 풍경·나무·집뿐 아니라 도회지 거리풍경과 철도역 장면에까지 확대 적용했다.
1874년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대부분 작품을 줄곧 거부해온 프랑스 아카데미의 공식 살롱전과 별개로 독자적인 최초의 전시회를 열었다. 문필가였던 루이 르루아는 같은 해 풍자잡지인 〈르 샤리바리 Le Charivari〉에 기고한 글에서 모네의 그림 〈인상:해돋이 Impression:Sunrise〉(1872,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의 제목을 따서 야유 섞인 의미로 그들을 '인상파'(인상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러자 당사자인 화가들은 그 명칭이 시각적 '인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자신들의 의도를 잘 나타내준다고 보고 스스로 그 명칭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이후로 1886년까지 7번에 걸쳐 전시회를 가졌다. 이 시기 동안 그들은 끊임없이 각자 개성적이고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으며, 모두 공통적으로 관습을 벗어나 자유로운 기법과 개성적인 주제표현 및 자연의 성실한 재현을 원리로 삼았다.
1880년대 중엽에 이르러 인상주의 그룹은 개개 화가들이 각기 독자적인 미학적 관심사와 원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짧은 존속기간 동안 미술사의 혁명을 이루었는데 폴 세잔, 에드가 드가,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 같은 후세대 예술가들에게 기법상의 출발점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이후 서양 미술 전체를 기법과 주제에 있어서 전통적인 틀에서 해방시켰다(→ 후기인상주의).
음악
음악에서는 클로드 드뷔시가 대표적인 인상주의자로 꼽힌다. 드뷔시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일반적인 미학적 태도에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그들의 회화기법과 비슷한 음악기법으로 작곡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았다. 또한 드뷔시 음악의 특징은 초기작에서 말기작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의 인상주의라는 명칭도 기껏해야 1892~1903년에 작곡한 작품과 양식이 이와 매우 비슷한 후기 작품 몇 곡에 한해서 적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같은 인상주의 작품을 몇 가지 꼽자면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Pelléas et Mélisande〉(1902 초연), 관현악 소품 〈구름 Nuages〉(1899년 완성한 〈야상곡 Nocturnes〉의 일부), 피아노 소품 〈돛 Voiles〉(1910년 작곡한 〈12개의 서곡 Douze Préludes〉 제1집의 일부) 등이 있다. 인상주의 경향으로 꼽히는 그밖의 작곡가로는 모리스 라벨, 프레더릭 딜리어스, 오토리노 레스피기, 카롤 시마노프스키, 찰스 그리퍼스 등이 있다. 인상주의 음악은 흔히 섬세한 연약함, 무정형의 수동성, 모호한 분위기를 지닌 음악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더 정확히 규정하면, 표현의 절제와 간소화, 정체미(停滯美), 작곡가가 순수한 음 자체의 아름다움과 신비성에 매료되는 데 따른 자극적·색채적 음효과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기술적인 면에서 보면 이런 특성은 보통 화음의 정태적 이용, 애매모호한 음조, 분명한 형식적 대비의 결여, 리듬의 추진력 결여, 선율과 반주의 구분의 불분명함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상주의는 낭만주의의 극단성에서 탈피한 음악조류로 여겨져왔지만 그 특징 가운데 많은 것들은 프란츠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등 표현주의의 선구자로도 꼽히는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인상주의
인상주의의 도입은 고희동 이후 본격적인 서양화의 도입을 시작으로 일본의 인상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1900년대 이후 일본은 도쿄[東京] 미술학교를 중심으로 아카데미즘이 형성되었는데 주로 프랑스의 아카데미즘과 인상파적 요소가 혼합된 양식을 추구했다.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등이 주축이 된 이들은 자파(紫派) 또는 회색파(灰色派)로 불리며 외광파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으나 회화의 주제와 내용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본 아카데미즘의 인상파적 요소는 도쿄 미술학교 출신의 고희동·김진호·김찬영·나혜석 등에 의해 한국에 도입된 이후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으며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통해 회화의 한 양식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1930년대 서양화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면서 이러한 인상주의적인 요소가 뒤섞인 관학적인 화풍에서 좀더 본격적인 인상주의적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인성은 〈초하의 빛〉(1933)·〈어느 가을날〉(1934) 등으로 독특한 화풍을 형성하면서 이후 선전의 주류를 이루었던 관학파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인상주의적 양식을 구축했으며 오지호와 주경은 인상주의를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작품을 보여주었다. 특히 오지호는 〈순수회화론〉에서 색채를 중심으로 한 회화론을 펼쳐 인상주의의 정착에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고 〈사과나무〉(1937)·〈남향집〉(1939) 등에서처럼 본격적인 인상주의라 할 만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밖에 인상주의 화풍이 두드러지는 작가로는 서진달·김용조 등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인상파가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 회화 유파로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그 대부분은 재현적 회화를 표현하는 기법적 요소로 나타났던 하나의 경향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연주의를 지향하는 유럽 미술운동의 한 갈래로서, 프랑스 풍경화에 사실주의를 확립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자연에서 위안을 찾는 낭만주의 운동에 자극을 받았으면서도, 풍경을 단순히 우화나 역사적 서술을 위한 배경으로만 이용한 고전주의의 진부한 전통만이 아니라 이미 기반을 굳힌 낭만파 풍경화의 감상적인 통속성에도 등을 돌렸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해 풍경을 그렸다. 그들은 17세기의 프랑스와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 및 같은 시대의 영국 풍경화가들의 작품을 미술의 토대로 삼았다. 이런 작품들은 모두 섬세한 관찰력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주제에 접근했다.
바르비종파라는 이름은 파리 근처 퐁텐블로 숲속에 있는 작은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유파의 지도자인 테오도르 루소와 장 프랑수아 밀레는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다 가난에 쫓겨, 1846년과 1849년에 각각 파리를 떠나 이 마을에 정착했다. 많은 풍경화가와 동물화가들이 그들을 따라 이 마을로 몰려들었는데, 일부는 바르비종에 정착했고 나머지는 이따금 들르곤 했다. 이들 가운데 곧 주목을 받게 된 화가로는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나르시스 비르질 디아즈 드 라 페냐, 쥘 뒤프레, 샤를 자크, 콩스탕 트루아용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바르비종에 오기 전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제각기 독특한 표현 양식과 특별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 루소의 풍경화는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과 어렴풋이 보이는 나무들을 중심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좁은 범위의 풍경을 자세히 묘사한 뒤프레의 풍경화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도비니는 풀이 우거진 푸른 들판을 좋아했고, 디아즈는 햇살이 그림자로 얼룩무늬를 이루는 숲속 풍경을 그렸다. 트루아용과 자크는 가축이 등장하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그렸다. 이 집단의 주요화가들 가운데 순수한 풍경화를 중요시하지 않은 유일한 화가인 밀레는 불멸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농부를 그려, 자연과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미천한 사람들의 고귀한 삶을 찬양했다. 이 미술가들은 모두 낭만주의에서 영감을 받았으면서도 무섭고 위풍당당한 자연의 모습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한 자연의 모습을 강조했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영국 화가들과는 달리 빛과 색깔의 표면효과나 대기의 변화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대신 이들은 변치 않는 자연의 특징을 강조했고, 제한된 색채로 형태를 충실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또한 분위기에 관심을 가졌으며, 자신이 본 것을 풍경의 객관적 '특성'으로 표현하기 위해 자연의 겉모습을 어느 정도 바꾸어 표현하기도 했다.
한때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었던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차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점 더 많은 성공을 거두었고, 대부분 아카데미 프랑세즈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으며, 그림은 비싼 값에 팔렸다. 그들의 작품은 19세기말에 특히 인기를 얻었다. 일부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구도와 묘사의 대가들이었지만, 나머지 화가들은 그만큼 유능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역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의 유파로서 순수하고 객관적인 풍경화를 프랑스의 정통 장르로 확립하는 데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ㅎㅎ 파리 시내만 구경하기도 열라 힘들다
중국 다닐때는 그냥 거리만 보면 한국에 있는건지 중국에 있는건지 실감 안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동네는
외국에 온게 확 티가 난다
일단 인간들이 다들 코쟁이들이 많기도 하고
거리가 이쁜 동네가 정말 많다. ㅎㅎ 시간만 있으면
여기저기 천천히 구경 다니고 픈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항상 쫓기듯이 돌아 다니기만
몽마르뜨 언덕, 퐁네프, 노틀담, 루블, 에펠, 개선문..뭐 워낙 파리가 작아서 인지 짧은 시간에 일단 생각나는건 겉에서 보긴 다 봤네 ㅎㅎ
그 피라미드가 그 피라미드가 맞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사진은 있다..별거 없더라 ㅡ.ㅡ;
그보단 밤에 에펠탑 불 들어온 상태(노란색)에서 (매시 정각에서 5분간 이라는데 난 10시에만 봤음) 반짝반짝(하얀색)이는 효과 주던데 졸라 멋지더라 ㅡ.ㅡ;
결국 갈아타는데서 전철 끈겨서 숙소에 걸어 갔다는... 불어도 안되고 주소도 모르니 ㅡ.ㅡ;;;
ㅎㅎ 파리 시내만 구경하기도 열라 힘들다
중국 다닐때는 그냥 거리만 보면 한국에 있는건지 중국에 있는건지 실감 안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동네는
외국에 온게 확 티가 난다
일단 인간들이 다들 코쟁이들이 많기도 하고
거리가 이쁜 동네가 정말 많다. ㅎㅎ 시간만 있으면
여기저기 천천히 구경 다니고 픈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항상 쫓기듯이 돌아 다니기만
몽마르뜨 언덕, 퐁네프, 노틀담, 루블, 에펠, 개선문..뭐 워낙 파리가 작아서 인지 짧은 시간에 일단 생각나는건 겉에서 보긴 다 봤네 ㅎㅎ
우호호~~ 동수야 루브르 박물관 가면 다빈치 코드에 나왔던 그 피라미드 사진좀 찍어 오려므나~~ ^^;
ps : 메일 확인 잘하구;;;
그 피라미드가 그 피라미드가 맞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사진은 있다..별거 없더라 ㅡ.ㅡ;
그보단 밤에 에펠탑 불 들어온 상태(노란색)에서 (매시 정각에서 5분간 이라는데 난 10시에만 봤음) 반짝반짝(하얀색)이는 효과 주던데 졸라 멋지더라 ㅡ.ㅡ;
결국 갈아타는데서 전철 끈겨서 숙소에 걸어 갔다는... 불어도 안되고 주소도 모르니 ㅡ.ㅡ;;;
서울이 파리보다 8시간 빠르구나;;;; 암튼 ㅋ 관광 잘하고 와~~
ps : 단소 같은거 연습해서 몽마르뜨 언덕에 쭈그리고 앉아서 '아리랑'이라도 한번 불어 보지 그러냐? 버스비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 한복까지 입으면 더욱 좋겄지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