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 강풀
따뜻하다. 강풀의 만화..
어찌보면 인생의 내리막길인 노년에도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 자신인 것을 알려준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얼굴은 주름지고, 목소리는 탁해져도 마음속의 사랑은 뜨거울 수 있다는 것. 초라해 보이고 소소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어르신들의 사랑과 우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듯한 이 느낌..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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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중역의 위치에 있을 아버지 세대들의 결정으로 20대의 비정규직화, 낮은 인건비, 열악한 근무 조건들이 결정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20대는 착취당하고 있다. 다양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인질극에 시달려 터널을 나온 20대에게 승자독식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다. 20대에겐 그들만의 바리케이트와 짱돌이 필요하다. 최근에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해서 당사자인 20대가 주도하여 일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던 일들은 충분히 바람직한 일들이었다고 생각한다.
'40대가 되면 지금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라는 말이 있다. 40대는 지금 사회의 모습을 만드는 데 일조한 세대이면서, 또한 사회를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가장큰 힘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것 같다.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40대,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40대로 나 자신을 키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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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맞추다 - 김용택 (Front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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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스톨만(Richard Matthew Stallman :1953~)
리눅스를 처음 알게된 고등학교 2학년 시절부터 경건한 이름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사람의 이름을 드는 것만으로도 숙연해 지곤 했었다. 리차트 스톨만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프로그래머들에게 전파 시켰고 FSF(Free Software Foundation)를 설립하고,GNU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독점소프트웨어의 배타적 라이선스에 대항하는 GPL이라는 강력한 Copyleft 정책을 만들었다. (최근들어 GPL/AGPL 이 상업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에서 듀얼 라이선스로 채택되어 상용소프트웨어를 전파시키는데 일조되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 하다.)
처음 그의 이름을 들었던 1996년봄으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오픈소스 (사실 '오픈소스'라는 단어는 스톨만의 Free Software에 반하여 생겨난 것이다.) 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회사에서 관련된 업무를 맏게 된 것도 한 이유이겠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리차드 스톨만에 대한 책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Sam Williams'가 그를 인터뷰 하여 정리한 'FREE AS IN FREEDOM' 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바로 구입하려는 찰나에 '리차드 스톨만의 책이라면 당연히 무료로 공개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예감은 적중했다. 'FREE AS IN FREEDOM' 은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GFDL) 이라는 라이센스로 모두에게 공개 되어 있었다. 오랫만에 에릭 레이몬드의 '성당과 시장'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서 검색해보니 GNU 코리아 웹페이지에서 번역해 놓은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 FREE AS IN FREEDOM : 리차드 스톨만 | ![]() The Cathedral and the Baza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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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열심히 살아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거야 (115p ‘한 다리로 버티는 플라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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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스펜서 존슨 스타일의 우화를 바탕으로한 '자기계발' 서적들은 신물나는 대상이다. 스펜서 존슨의 책들이 대히트를 기록하자, 여기저기서 유사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스펜서 존슨도 비슷한 후속 저서를 계속 발표했다. 번지르한 말들로 포장은 잘되어 있지만, 재미도 없거니와 감동도 없고, 얄팍한 상술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삐딱한 시선의 내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가 책속에서 감동과 진정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단 독자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다.
반면에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진솔하게 담아 성공의 비결을 나누고자 하는 자서전 형식의 책들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실제로 본인이 걸어온 삶의 과정들 속에서 난관을 헤치고 습득한 아포리즘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 는 그런 종류의 책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원하던 의과대학의 입시에서도 낙방하여 한 지방대학교에 입학하여 어려운 경제 여건속에서 유기화학을 전공하여 졸업반이 되었으나 지원하는 대기업 마다 모두 떨어지고 내일 망해도 이상할것 없이 하향세를 걷고 있는 쇼후공업에 취업하게된다. 하지만 취업의 기쁨도 잠시 주의의 동료들은 흔들리는 회사의 위기속에서 불평과 불만을 표출하고 결국은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주의의 이런 환경에서 나름대로 굳은 심지를 지키려 하였으나 주변의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겯디지 못하고 마음이 흔들리고 더이상 일에 집중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다른 직업을 구하기 위해 자위대의 간부 후보생 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회사를 옮기는 일이 물거품이 되었고 좌절과 실의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절망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결국 불확실한 미래의 걱정 따위는 던져 버리고 바로 앞에 쌓여 있는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기로 결심하고 열과 성을 다해 일과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거기에서 부터 그의 성공은 시작되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에 집중하고 일을 사랑하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끊임없는 스스로를 단련한 그는 일을 통하여 인격의 수양과 더불어 큰 성공을 이루어내었다.
책 속의 이나모리 가즈오의 말들은 나 스스로의 나약함과 게으름을 반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신은 스스로 돋는 자를 돕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것은 신의 계시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물론 실제로 해결책을 찾아낸 것은 나였다. 하지만 고난과 번민에서 벗어나 일에 전년하는 나를 신이 가상하게 여겨 힌트를 준 것 같았다. 신이 손을 뻗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일에 전념하라. 그러면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반드시 신이 손을 내밀 것이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삶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 '간절하지 않다면 꿈꾸지 마라,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완벽하게 해도 모자라다', '베스트라는 말은, 다른 대상과 비교했을 때 가장 좋다는 의미로, 상대적입니다. 따라서 어디라도 베스트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교세라는 베스트가 아니라 퍼펙트를 추구합니다. 퍼펙트는 베스트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베스트는 상대적이지만 퍼펙트는 절대적입니다.' 구절 하나하나가 모두 절실하게 다가 온다.
그의 성공 경험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교훈이다. '고(苦)'를 이겨내기 위한 도구로 그는 일에 대한 열정, 애정, 간절함, 완벽주의, 긍정적 사고 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일에 대한 열정은 보통사람을 뛰어 넘어 가혹해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저를 너무 가혹하게 내몰았는데, 이러다 갑자기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라는 직원에게 더욱더 박차를 가해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장면에서는 2009년 모 회사에서 신규 OS를 출시 한다며 호들갑스럽게 진행된 발표회가 생각난다. 당시 그 SW 회사의 대표가 행사장에서 자랑스러운 듯이 연설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혼한 연구원은 몇명이었고, 병원에 입원한 연구원은 몇명이었으며....' 물론 그만큼 열심히 일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는 말이었지만 직원들의 내부 사정은 처절했었고 출시예정이었던 그 제품의 모습도 닮아있었다. 순수 자체기술로 개발하였다던 SW들에서는 데모중에도 석연치 않은 성능을 보여줬었으며 open source 프로젝트들의 라이선스들이 발견되었었고 기업의 도덕성 문제가 재기 되기도 하였다. 그후 결과적으로 획기적인 좋은 제품이 나왔더라면 이나모리 가즈오의 교세라처럼 영웅적인 기업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제품은 소리없이 흐지부지 출시도 되지 못한채 잊혀졌으며 그 기업은 결국 다른 기업에 합병되었다.
그 기업이 이나모리 가즈오의 말처럼 신이 감동할 수 있는 경지까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간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직원들의 희생에 대비해서 좀 가혹한건 아닐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이나모리 가즈오는 단호하다. 자기가 맡은 일에 집중하여 직장안에서 혹은 자신의 비지니스에서의 성공을 얻은 것이야 말로 가치있는 일이라는 일관된 입장으로 보여진다. 과정속에서 아무리 절박하게 노력하였더라도 좋은 결과를 내어서 성공하지 못한것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다원화 시대에서의 '성공'의 의미는 과거의 통속적인 의미 보다는 더욱더 주관적으로 개인화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나모리 가즈오는 '가정에서 혹은 지인들의 관계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이야기 하는 '성공' 이라는 것은 '일(업무)' 혹은 '비지니스'에서의 성공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으로 비춰진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이 그의 인생 방정식인 '인생과 일 = 능력 x 열의(노력) x 사고방식' 에서 '-사고방식'에 해당하여 전체를 '-'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사내방송에 출연했었던 이지성 작가는 성공과 노력에 대해서 일반적인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그날 그의 이야기들은 나의 마음속에 두터운 여운을 남겼다. 성공과 노력에 대한 이나모리 가즈오와 이지성의 입장을 비교해 보자면, 이나모리 가즈오는 주어진 환경안에서 맡은일이 무엇이든 집중해서 해나가다 보면 인격의 수양과 함께 성공이 따라오며 일에 혼신을 다하여 신이 감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입장이다. 반면에 이지성 작가의 입장은 '노력' 과 '노동'을 구분하여 생각하고 있고 '성공'에 대한 의미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우는 주어진 환경안에서의 노력을 시사하고 있고, 이지성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을 것(즉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 꿈)을 이야기 하고 있는것 같았다. 노력에 대해서도 이나모리 가즈오는 맡은일 주어진 환경에서의 노력을 이야기 하고, 이지성은 '노력'과 '노동'을 구분하여, '노력'은 '마치 춤을 추듯이 그 시간에 완전히 몰입되어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 이라고 표현했었고, '노동'을 '반복적으로 계속 해나아가지만, 무언가 달라지지 않는 일' 이라고 표현 했었다. 성공 또한 이나모리 가즈오는 외적으로 무언가 크게 이루어 일(업무,비지니스)에서 탁월한 결과를 보이는 그런 것을 뜻하는것 같았는데, 이지성 작가는'누군가를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 '남을 주기 위해 하는 아름다운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입장이었다. 나의 입장에서 받아 들이기에 이나모리 가즈오의 성공론은 일관적이고 한방향으로 수렴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이지성 작가의 지론은 좀더 개개인의 입장에서 능동적이고 다원화 시대에 적합한 성공의 의미를 재정립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인다. 그가 회사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 '회사에서는 옆과 뒤를 보고, 혼자있는 시간에는 앞을 보라.'라는 말도 그런 의미로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지성 작가의 지론이 좀 더 능동적인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노력과 열정, 깊이 있는 통찰력을 존경한다. 나는 이나모리 가즈오처럼 큰 성공을 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내 안에서 매일 매일 조금씩 작은 성공들을 만들어 가고 주위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그것은 작은 취미 생활에서의 모습일 수도 있고, 가족간의 관계에서 일수도 있고, 동료들과의 업무에서 혹은 작은 봉사활동에서 일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서 인생의 성공이란 어떤 모습일때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을 부른다. 내 주변의 작은 성공을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한다.
Posted by 아라비카

너무나 친숙해서 그것의 내용이나 본질을 잘 모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쉽게 이야기되어지고 흔하게 눈앞에 보이는 그런 것들.. 때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다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것들이있다. 주위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종종 '삼총사', '피터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로빈훗', '서유기' 등의 원작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경우와 비슷한 상황이다. 너무나 유명해서 아직 읽어 보지 못한케이스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익숙한 것들에는 더이상 호기심을 갖지않는다. 단편적으로나마 수없이 노출되고 있는 그들의 존재감은 무기력한 우리를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소크라테스' 가 그러한 인물중 하나였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 469 ~ BC 399) 는 그의 놀라운 유명세와는 다르게, 정작 자신의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다만 그의 제자인 플라톤(Plato, BC 427 ~ BC 347) 이 자신의 저서에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을 뿐이다. 플라톤의 저서 '프로타고라스' 에도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프로타고라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의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음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의 소크라테스의 언행과는 다를 수 있다. 오히려 플라톤이 자신의 주장을 위해 소크라테스를 이용하고 있을 수도 있을터이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에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의 긴장감넘치는 대화를 청중의 입장에서 지켜보면서 마치 아멜리 노통의 소설 '적의 화장법' ,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프로타고라스는 플라톤의 대표 저작인 '대화'편의 25개 이야기중 하나이다. 프로타고라스(490/485년~415/410년)는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가장 대표적인 소피스트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을 통해 상대주의적 지식론을 이야기한 사람이다. 또한 최초로 지식 혹은 덕(arete)을 가르쳐 주고 그 대가로 비용을 지불 받고자했던 사람이다. (이에 관련해서는 에우아틀로스와 프로타고라스사이의 교육비에 대한 법정소송까지 진행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이런 프로타고라스가 소크라테스가 살고 있는 아테네에 방문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힙포크라테스가 그 사실에 들떠 프로타고라스에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무작정 지식을 배우고 싶어하는데 소크라테스는 들떠있는 친구를 만류하며 그와 제대로된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신중히 결정하라고 조언하며 만나서 직접 확인해 볼 것을 제안한다.
"이 사람아, 정신을 차리게. 자네는 지금 자기 영혼을 어떤 위태로운 처지에 내맡기려는 것을 모르고 있네. .. (중략) .. 그런데 자네는 지금 육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 즉 자네의 행복과 불행으로 도맡고 있는 영혼이 좋아지느냐 나빠지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소홀히 다루고 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와 힙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와 사람들이 모여있는 칼리아스의 집으로 가게 되고,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 자신의 친구가 프로타고라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문제에 대하여 모여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해 볼 것을 요청하고 프로타고라스는 이에 동의한다. 칼리스의 도움으로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가 시작된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 편에서 핵심적으로 논의하는 이야기는 다음의 세가지이다.
1. 덕(arete)이란 가르쳐 질 수 있는 것인가.
2. 정의, 절제, 지혜, 경건, 분별과 같은 것들도 덕(arete)의 일부분인가? 아니면 이름만 다른 하나의 덕(arete) 인가.
3. '용기'는 덕(arete)을 구성하는 나머지 요소들과 다른 것인가.
(그 밖에 시의 해석을 둘러싼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과 뛰어난 사람으로 '있는 것'은 같은 것인가에 대한 토론도 중간에 섞여 있다. '쾌락(pleasure)은 선이고 괴로움(pain)은 악이다의 토론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인 삼단논법의 파괴력은 굉장했다. 소크라테스는 토론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하여 자신은 그것에 대하여 잘모르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는 내용을 함께 모인 청중들에게 주지시킨다. 소크라테스는 그점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원초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내용도 관념적이며 윤리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상대방으로 부터 하나하나 원하는 대답을 얻어낸다. 이런 질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상대방은 어느새 소크라테스의 '덫'에 빠져들고 만다. 상대방은 결국 자신의 주장에 대한 헛점을 청중들 앞에서 인정해버리게 된다. '프로타고라스'에서 프로타고라스가 소크라테스에게 쩔쩔매는 모습은 왠지모르게 통쾌함 마저 느껴진다. 소크라테스의 삼단논법을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명제에 대한 가정중 하나를 무력화킬수 있어야 하는데 무력화시키는 사이에 또다른 논법에 말려들어 가는 것 같다. A는 B다. B는 C다. 그러므로 A=C다 라는 논리의 흐름속에서 A가 아닌B, C가 아닌 B를 찾아내어 증명해야 소크라테스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인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은 결국 기득권 세력이라고 볼 수 있는 소피스트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깨우치라고 던진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고의 知者로 떠받들여지던 인물들이 대중앞에 무너지면서 소크라테스의 추종자가 늘어나는 동시에 그를 미워하는 세력들 역시 만만치 않게 늘어났음은 당연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결국에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 ,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 '사회를 혼란스럽게한다', '신성을 모독했다'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었다는 사실에 어느정도 공감이 되었다.
각각의 주제에 대한 두사람의 토론을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진진 했다. 재미난 소설을 읽는 듯 하기도 했고, 마치 100분토론을 지켜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다만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던 두 사람이 일정 부분 서로의 주장을 받아 들여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는 아름다운 미덕을 보여 줬다는 점이 100분 토론의 그것과는 사믓 달랐다. 소크라테스는 '덕(arete)이란 가르쳐 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하여 처음의 주장과 달리 가르쳐 질 수 있다는 것에 동의 하였으며,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여 '덕(arete)을 이루는 구성요소중 용기만이 나머지와 다르다' 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100분토론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있는 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아쉽게도 좀더 깊은 토론을 해보자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뒤로 하고 프로타고라스는 더 이상의 논의를 거부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도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뜬다.)
플라톤의 대화편 최고의 백미는 '국가' 라고 한다. 장 자크 루소는 이 책을 “인간 교육에 대한 세계 최대의 논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국가'를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ps : 책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미리 자주 언급되는 주제들에 대한 단어의 원래 뜻을 생각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것 같다. (덕-arete , 정의-justice, 절제-temperance, 지혜-wisdom, 경건-holiness, 용기-courage)
Posted by 아라비카

다행히 나는 예전과는 다르게 '고전'이라는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릇한 호기심과 설레임을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시챗말로 고전의 '포스'에 각성되어 저항할 수 없이 끌려가고 있다고나 할까. 2500여년 전에 중국땅을 살다간 '공자'의 언행을 담은 논어는 어릴적 이미지와 달리 많이 변해 있었다.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엮어 스무편으로 구성된 논어는 우리 일상과 매우 가까이에 함께하고 있었다. 건조하게 반복되는 날들속에서 소년의 풋풋함과 싱그러움을 잃어버리고 있는 서른세살의 어느날, 논어는 촉촉한 영혼의 단비가 되어 주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알게된 사실 이었지만, 20편으로 구성된 논어의 각 편의 제목은 단순히 그 편에서 첫번째로 시작되는 문장의 앞 두글자를 딴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편' 안에서도 일관성이 없는 주제들이 다뤄지기도 한다. 게다가 공자 본인이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틀을 잡아 집필한 책이 아니고 제자와 혹은 그 상황속 특정인물들과 나눈 대화들을 훗날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어서 주제가 중복되거나 다르게 표현 되기도 한다. 이는 공자께서 말씀 하실때 같은 주제라고 하여도 묻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배려하여 대답하였기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공자 시대의 한반도는 고조선 시대였고, 공자보다 100년전 인도에는 석가모니가 있었고, 공자후 100년 뒤에는 그리스의 소크라테스가 활동했었다. 청동기 시대가 막을내리고 농경사회에 까지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때였다.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이시대에서도 인간의 정신이 추구해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탐구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항상 바쁘고 새롭게, 사물뿐만이 아닌 어쩌면 인간조차 인스턴트화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저마다 갈증과 염증을 앓고 있다. 논어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라는 말처럼, 공자의 시대에도 과거의 주나라의 제도와 풍습에서 배움을 얻고 새롭게 계승 하였듯이, 현재의 우리역시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움을 더한다면 이러한 갈증과 염증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논어를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고 실천에 옮기고 싶도록 나의 마음을 흔들어버리는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스스로의 그릇이 작은 것을 잘알고 있는지라 실천은 둘째로 하고 기억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구절들중 일부를 옮겨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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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라비카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나무야 ,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거야. 또 만나자.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가슴을 두드리고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고전이 될 이야기다.
ps : 포레스트 카터는 죽은후에 백인우월주의자 이면서 KKK단의 일원이었음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어떻게 그가 백인 우월 주의자가 됐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의 밑줄긋기
Posted by 아라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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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라비카

'나중에 온 사람'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대신하는 이름이다. 사회적으로 마지막 바닥의 끝자락에 떨어져 있는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 줘야 할것인가? 전체적인 부는 늘어났지만 부에서 극도로 소외된 계층도 늘어났다. 부는 곧 '가진다'의 의미를 넘어서 '할수있다'라는 뜻이었다. 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그들을 어떻게 지켜 내고 어떻게 전체의 행복을 증가 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러스킨은 고민은 계속되었다. 당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아직 태동하지 않았을 시점이었고, 러스킨의 이른 바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사회적 가치를 나누어 준다는 주장은 철저하게 외면 받았다. 숙련된 노동자와 초급 노동자에게 같은 수준의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 할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온 사람'과 '일찍 온 사람'에게 어떻게 같은 대우를 해 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비 상식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나중에 온 사람'에 대한 배려가 결국에는 사회 전체의 행복에 기여 한다는 그의 사상은 결국 수정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러스킨은 부를 소유한 일부의 사람들만이 아닌 소외된 모든 사람의 따뜻한 미래를 위해서 경제시스템의 각 구성요소들이 어떤 역할 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가슴으로 생각해낸 사상가였다.
이 책은 경제학에도 인간의 정신과 영혼이 담겨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명저서로, 경제학 최대의 변수는 '애정'이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읽는이의 시각에 따라 쉬울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혹자는 전면 부정하고 싶을 수도 있는 내용..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초래한 금융위기의 아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이 시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인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 역시 '나중에 온 사람'을 배려하는 '조화로운 불평등'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은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추진하면서 많은 저항에 부딪치고 있다. 그 중 많은 세력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이라는 사실은 마태복음의 '나중온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라'는 성경 구절의 의미를 곱씹어보게한다.
책 머리의 '옮긴이의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감동적이었던 책.
Posted by 아라비카
프롤로그...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게으름은 늘어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 녀석인것 같다. 오늘 이 녀석을 처리하지 못하면 평생 내 어깨를 짓누를 거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오래된 게으름중 제일 큰 녀석인 밀린 리뷰들을 하나씩 털어내려고 한다. 블로그를 처음 만들면서 블로그의 컨텐츠를 무엇으로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끝에 나온 것이 '책을 읽고 나면 리뷰를 쓰자' 였다. 몇년 동안 잘 지켜왔는데 작년 11월 이후로 더이상 리뷰를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잃어 버린 일년 동안 많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한권 한권의 무게가 내 어깨를 누르고 있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더이상 어깨위에 책을 얹어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 마음이 무거워 지기 시작했다... 리뷰를 쓰지 않으면 더 이상 책을 못읽을거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이제 어깨위에 쌓아 놓았던 묶은 책들을 블로그에 내려 놓으려고 한다. 읽은지가 오래되어서 책의 느낌이 가물 가물하다. 흐릿한 그림자만 남아 있는 한권 한권의 실루엣을 더듬어 글로 적어본다.

이 책을 읽을 시점에는 한동안 그의 새 소설이 나오지 않아서 시큰둥해 있던 때였다. 덕분에 책이 출판 되자 마자 바로 구매해서 읽을 수 있었다. '영화처럼'에는 다섯가지 단편소설들이 등장한다. 사실 처음에는 단편소설집인줄 모르고 구매해서 살짝 실망도 했었다. 그의 대표작들인 GO 나, 플라이 대디 플라이, 레볼루션 No.3 등을 생각했다면 다소 심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모두 영화제목과 동명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각 단편들의 이름은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 '페일 라이더', '사랑의 샘' 이다. 마치 존경하는 선배 뮤지션의 노래들을 그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후배 가수들이 리바이벌하여 녹음하여 나온 한장의 헌정앨범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이드는 책이다. -- 보너스 트랙으로 '로마의 휴일'이 숨어 있는 격이다. -- 어릴적부터 영화광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자신이 좋아했던 그 영화들에게 헌정하는 글들의 모음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제목에서 받은 느낌처럼,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동명의 영화 다섯 편을 계기로 펼쳐진다. 영화를 매개체로 한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불우했던 사내들의 우정, 부도덕한 세상에 펀치를 날려버리는 정의, 풋풋한 사랑과 일탈, 푸근한 인상의 아줌마 라이더의 멋드러진 복수, 할머니를 위한 이벤트를 계획하면 생기는 즐거운 에피소드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내 데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태양은 가득히'는 작가 자신의 실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재일 조선인인 주인공들의 성장배경 하며 영화광인 캐릭터들 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 싶다. 영화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항할 용기를 얻고, 사랑의 눈물을 마시고, 우정을 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로마의 휴일'과 관련이 있어서 처음에는 '혹시 단편 소설들이 아닌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품기도 했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사랑의 샘'까지 다 읽었을 때, 나는 결국 로마의 휴일을 구해 볼 수 밖에 없었다.대체 무슨 영화길래 계속 나오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ps : 로마의 휴일,.. 오드리 햅번은 너무나도 눈이 부시더군요...
Posted by 아라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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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집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녹음테이프입니다. 테이프 속에는 모두 여덟 곡의 노래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저에겐 특별한 노래들입니다. 오래 전 친구의 생일선물로 만들던 녹음테이프가 기억납니다. 나만의 특별한 노래들을 모아 만들었던 녹음테이프도 생각납니다. LP나 CD를 재생시킨 후 카세트 데크의 빨간색 녹음버튼을 누르면 ‘실시간’으로 소리를 이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소리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란, 그리고 음악이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사라진 소리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이 녹음테이프 속에는 제가 이 년 동안 세상 여러 곳에서 붙잡아둔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의 취향과 마음과 선택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카세트 데크에 있는 파란색 플레이버튼을 눌러 제가 녹음한 소리를 들어봐주십시오. - 김중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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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톨스토이의 '신의 나라는 여러분 속에 있다.'는 성경 구절에서 인용한 제목이더군요. 나오는 구절이더군요. 누가 볶음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검색하다가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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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라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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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 사랑합니다...!